[사설] 무연고 죽음 5200명 시대, 애도마저 각자도생인가

지난해 무연고 사망자가 5200명을 넘었다.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는 죽음은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제도가 감당해야 할 문제다.

정유진기자
입력 2026.07.28 00:43 · 수정 00:43· 조회 0
[사설] 무연고 죽음 5200명 시대, 애도마저 각자도생인가
▲ 인적이 끊긴 늦가을 공원의 빈 의자

지난해 유족을 찾지 못했거나 유족이 시신 인수를 포기한 무연고 사망자가 5200명을 넘어섰다. 10년 전의 네 배가 넘는 규모다. 하루 열네 명이 자신을 배웅할 사람 없이 세상을 떠난 셈이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연령대다. 65세 이상이 여전히 다수지만, 50~64세 중장년층 비중이 34%까지 올라왔다. 무연고 죽음은 더 이상 노년의 문제만이 아니다.

숫자보다 무거운 것은 그 죽음이 처리되는 방식이다.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는 무연고 사망자를 조례에 따라 곧바로 화장하고 봉안한다. 빈소도, 조문객도, 이름을 부르는 절차도 없다. 일부 지자체가 공영장례를 도입해 최소한의 의식을 치르고 있지만, 관련 조례를 갖춘 곳은 전체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어느 지역에서 숨졌느냐에 따라 마지막 예우가 갈리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제도의 공백은 죽음 이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무연고 사망자의 상당수는 생전에 이미 복지 사각지대에 있었다. 주소지와 실제 거주지가 다르거나, 건강보험료를 장기 체납했거나, 어떤 상담 창구에도 기록이 남지 않은 이들이다. 위기 가구를 찾아내는 정보는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고, 발견되더라도 연결해 줄 사람이 없으면 목록으로만 남는다. 고독한 죽음은 대개 고독한 삶의 마지막 장면이다.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공영장례를 지자체 재량이 아니라 전국 공통의 기준으로 세워야 한다. 최소한의 빈소와 애도 절차, 그 비용을 어디서 부담할지까지 법으로 정해야 한다. 둘째, 위기 징후 정보를 연계해 사후가 아니라 생전에 닿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시신 인수를 포기한 가족을 도덕적으로 탓하기 전에, 장례비를 감당하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실제로 인수 포기 사유 가운데 경제적 부담을 든 응답이 가장 많다는 조사도 있다.

한 사회의 품격은 태어난 사람을 어떻게 맞이하느냐만이 아니라, 떠나는 사람을 어떻게 배웅하느냐로도 드러난다. 누구도 이름 없이 정리되어서는 안 된다. 애도까지 각자 알아서 해결하라고 미루는 사회라면, 그 사회가 지키겠다고 말하는 존엄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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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진 기자 · 오피니언부에서 취재합니다.기자 구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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